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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재단, 518명에게 장학금 38억 원 전달 등록일: 2024.02.26

아산재단, 518명에게 장학금 38억 원 전달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2월 27일(화)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2024년 장학증서 수여식을 개최했습니다.

 

아산재단은 이날 대학원생 87명, 대학생 431명 총 518명에게 장학금 38억 원을 전달했습니다.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원 장학생은 77명(국내 46명, 해외 31명)으로 확대되어 졸업 시까지 매년 2,000 ∼ 4,000만원을 지원받게 됩니다.

 

대학교 장학생에는 군인, 경찰, 소방, 해양경찰 등 국가의 안전을 위해 복무하는 대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제정된 ‘MIU(Men In Uniform) 자녀 장학생’ 230명과 산업체 장기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지역산학협력 장학생’ 100명, ‘북한이탈청소년 장학생’ 55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금년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업성적이 우수하며 의생명과학자를 꿈꾸는 대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해 ‘의생명과학분야 대학교 장학생’ 제도를 신설해 37명을 선발했습니다.

 

북한이탈청소년과 의생명과학분야 대학생에게는 연 600만원의 학업보조비를 지원하여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산재단은 1977년 재단 설립시부터 지속적으로 장학 사업을 펼쳐오고 있으며, 지금까지 3만 7천여 명의 학생들에게 총 870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 인사말

 

<정몽준 이사장>

 

건강하신 모습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산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신 여러분, 축하합니다.

 

오늘 장학생들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해주신 재단 이사님들과 내외빈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장학생들을 선발하느라 애써주신 장학자문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젊은 장학생 여러분들을 보니까 저도 젊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선친께서는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1977년에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셨는데, 제일 먼저 하신 사업 중 하나가 장학사업입니다. 어려운 형편의 젊은이들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셨습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서 학교도 여러 개 설립하시고, 지역사회교육협의회라는 교육단체를 직접 만들어서 청소년을 위한 직업 교육과 야간학교 개설, 지역 주민을 위한 교양강좌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셨습니다.

 

아버님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님은 북한 땅인 강원도 통천의 농촌 마을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습니다. 농사일을 도우시면서 일생동안 받으신 공식 교육이라고는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훈장으로 계시던 서당을 3년 다니신 것과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 과정을 4~6학년 3년 다니신 것이 전부였지만 평생 배움에 대한 갈망은 대단히 크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에 집을 나서서 농사일을 거드셨는데 그때 유일한 즐거움이 집에서 한 시간씩 걸어가야 하는 동네 이장댁에 배달되던 동아일보를 어른들이 다 보신 다음에 기다렸다가 읽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동아일보에는 이광수 선생의 ‘흙’이라는 소설이 연재되었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인 허숭 변호사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서 서울에서 막노동 하시던 시절에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을 두 번이나 보셨다고 합니다. 독학으로 공부하시다 보니 고시에는 합격하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해도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네 번 가출을 하셨습니다. 처음 가출 때는 친구와 같이 청진으로 가기 위해 밤을 새워 걸어가다 아침에 난생처음 남의 집에 가서 식사를 구걸하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집주인에게 “밥 좀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가 너무 창피해서 도망치듯 나오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가출 때는 친구의 친척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면서 서울로 오셨다고 합니다.

 

1933년경에는 서울 안암동의 고려대 신축 공사장에서 돌과 목재를 등짐으로 나르는 일을 하셨는데, 같은 또래였던 대학생들을 보면서 많은 부러움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아버님은 나중에 울산대학교와 울산의 중고등학교, 서울의 현대고등학교를 설립하신 뒤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이상으로 정진하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셨는데 지금 살아계셨으면 바이오나 AI에 대해 공부하시고 새로운 사업을 하셨을 겁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저서의 작가 마크 맨슨은 우리나라를 여행한 뒤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는 제목의 영상물을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그 영상에서 마크 맨슨은 “한국은 생동감 있는 문화를 간직한 놀라운 나라이지만 동시에 높은 불안과 우울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높은 집값과 치열한 교육 경쟁 같은 여건 때문에 요즘의 젊은이들은 결혼도 잘 하지 않고 아이도 잘 낳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래도 조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현실을 그렇게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는 나라이고, 구매력을 고려한 평균 임금은 일본보다 18% 높다고 합니다. 요즘 의료체계 문제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은 선진국 중에서도 상위 수준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 기대수명은 80.3년인데 우리나라는 83.6년입니다.

 

요즘 해외에 나가면 많은 나라에서 현지인들이 우리 한국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K-POP에서 시작한 K-Culture가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합니다.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러시아, 북한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에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전선에서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6.25 전쟁의 와중인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세계의 롤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난관을 극복하고 발전을 이어온 것은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지만 특히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면서 “수능시험을 보는 날에는 어머니들로 가득 차고 기도를 열심히 하셔서 교회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웃음)

 

현재 25세에서 34세까지 인구를 기준으로 할 때 대학 이수 비율이 우리나라가 68%로 세계 1등이라고 합니다.

 

금년 1월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에서 최고의 영예인 혁신상을 362개 기업이 받았는데, 이중에서 128개사가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벤처와 창업기업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장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고전 ‘관자’에는 ‘1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게 없고, 1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게 없으며, 10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기르는 일만한 게 없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저희 아산재단은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희망을 갖고 성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장학생 여러분들도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을 해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인재로 성장하시기를 바랍니다.

 

장학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축사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존경하는 정몽준 이사장님, 재단 이사님들과 내외 귀빈 여러분, 행사에 참석하신 장학생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기뻐하실 장학생 부모님들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장학증서를 수여하는 귀한 자리에서 축하의 말씀을 드리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오늘 축사에 어울리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을텐데, 부족한 저에게 축사를 의뢰한 데는 아산장학생 선배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길 원하는 재단의 바람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아산재단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시기를 잘 통과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79학번으로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아산장학금을 받았습니다. 1983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과 해군 장교를 거쳤습니다. 1989년 판사로 임용되어 11년을 근무하고, 2000년 3월 모교인 고려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입학 전에 1년간 재수를 하였는데, 강원도 주문진 시골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수많은 좌절을 겪다 보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 것 같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님 제사에 오셨던 육군본부 영관장교인 숙부님이 그런 저를 보시고는‘안 되겠다’싶으셨는지 서울로 데려오셨고, 새로운 환경에서 노력하다 보니 법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에는 미팅도 하고 민주화 시위에도 참가하며 사고와 행동의 폭을 넓혔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꾸던 판사가 되기 위해 1980년 2학년 2학기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하였지만 1차 시험에 보기 좋게 떨어지면서 사법시험의 벽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헌법, 민법, 형법 3과목은 거의 만점을 받아야 하고 그 외에도 국제사법, 외국어, 경제학원론, 세계사, 국사 등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방황하던 시기에 아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아산장학생 모임 이름은 정담회라고 하고, 그 구성원을 정담인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정담인으로서 경험했던 추억과 꿈이 제 인생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장학생 소모임과 여름 농촌봉사에서 밤새워 토론하며 느낄 수 있었던 청춘과 열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입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해준 아산재단이 1977년에 설립되었으니 거의 반세기 동안 정주영 회장님은 아산재단을 통해 수많은 인재를 키워내고, 사회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일으켜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장학생 여러분들이 아산재단과 사회에서 받은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혜택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주위의 어려운 분들에게 돌려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를 포함한 아산장학생 동문들과 재학생 여러분들이 정주영 회장님의 선한 취지를 재창조하여 진심으로 실천해 나가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고 희망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산장학생에 선발된 것 자체로 각자의 마음속 작은 씨앗을 수 천, 수 만 배로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능력을 더욱 발전시켜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제가 받았던 혜택을 미흡하지만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2001년부터 외국 유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보조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정주영 회장님께서 인재를 키우시며 느끼셨을 보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산재단을 통해 배운 것을 실천하고, 정담인들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길 소망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정주영 회장님의 선한 취지를 묵묵히 실천한 아산재단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장학생 여러분 앞길에 발전과 축복이 함께 할 것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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