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SF
SF 영화 사상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2001년 우주의 오디세이'가 처음 발표된 것은 1968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30년이 넘도록 이 영화가 상징하는 2001년은 다가올 미래 예측에 대한 SF적 상상력의
대명사나 마찬가지로 여겨져 왔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영국 SF 작가 아서 클라크는 매우 정확하고 세밀한
과학적 묘사로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유인우주선이 태양계 바깥쪽에 있는 토성 부근까지
날아가서 외계인이 남긴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탐사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여행 기간 동안 우주비행사들은
인공 동면에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예측은 너무 빠른 것으로 판명되고 말았다. 실제로 2001년이 되었어도 아직 영화처럼
발달된 우주선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는 사실 토성은 고사하고 32년 전에 아폴로 우주선이 달까지
날아간 이후 그보다 더 먼 곳을 전혀 가보지 못했다. 게다가 사람의 인공동면 기술도 아직 개발되지 않았고,
또 영화에 나오는 '할(HAL)9000'처럼 아주 뛰어난 인공지능 컴퓨터도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실현된 SF
그렇지만 아서 클라크의 상상력이 아주 멋지게 실현된 경우도 있다. 그는 현대문명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학 기술인 통신위성의 아이디어를 세계 최초로 내놓은 인물이다.
그는 2차대전 당시 공군에서 레이더 담당 교육장교로 복무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일급 기밀로 분류되던
최첨단 통신 장비 등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는 그런 고급 정보들을 바탕으로 과학기사를
써서 일반인 대상의 과학 잡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군 당국의 검열을 거쳐서였지만.
1945년 7월에 클라크는 '국제 통신의 미래'라는 글을 발표했다. 바로 이 글에서 그는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통신 중계용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라디오나 TV신호는 비용 및 기술적
문제 등으로 도저히 대륙간 통신이 불가능하기 때문에(그 당시엔 바다 속은 말할 것도 없고 육지에도 통신용
케이블이나 중계 기지가 건설되기 전이었다), 인공위성을 띄워서 장거리 무선 통신의 중계국 역할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가 이 글을 처음 발표했을 땐 아직 인공위성 그 자체도 탄생하기 전이었다.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1957년의 일이다.)
클라크의 예언대로 통신위성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서였다. 1964년에 발사된
신컴(Syncom) 3호는 정지 궤도에 오른 첫번째 TV 중계위성이며, 바로 이 위성을 통해 1964년 동경올림픽이
세계 최초로 생중계되었던 것이다.
웃지 못할 일은 당시 미국의 꽤 많은 지역에서 올림픽 생중계를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게 중계가 되었지만, 정작 미국의 TV 방송사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기존의 프로그램이나
광고 방송을 중단시키지 않고 그냥 내보냈기 때문이다.
SF는 국가 기밀 누설?
한편 SF 작가의 예측이 너무나 정확해서 일어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1944년 3월 어느날, 미국에서
FBI의 수사관들이 한 SF잡지사 편집국에 들이닥쳤다. 혐의는 국가 기밀 누설. 당시 미군 당국에서 극비리에
개발중이던 가공할 신무기가 그 잡지의 한 단편 소설에 생생하게 묘사되었던 것이다.
문제의 작품은 클리브 카트밀이란 작가가 쓴 단편 '데드라인'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등장한 것은 다름아닌
원자폭탄이었다. FBI가 들이닥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음은 물론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세계 최고의
과학자들을 끌어모아 '맨하탄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극비리에 원폭을 개발중이었는데, 그 내용이 싸구려
SF 잡지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니 보안 당국이 혼비백산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 작품은 결코 작가가 국가 기밀을 염탐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공공 도서관에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물리학 이론서들만을 참고하여 오로지 상상력만으로 원자폭탄을 묘사했을 뿐이었다.
상상하라,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나니
이렇듯 SF 작가의 상상력은 때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예리하게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실
SF 작가들은 정확한 미래예측보다는 그저 다양한 가능성들을 탐색해 보는 작업 그 자체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엔 과학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타워즈'의 주인공들은 마치 국제선 비행기 타고 다니듯이 간단하게 장거리 우주 여행을 다니는데,
실제로는 이런 우주 여행이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라 우주선은 빛의 속도보다 빨리
날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6번째 날'에서는 복제인간을 무슨 붕어빵 찍어 내듯이 쉽게 만들어 내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묘사이다. 복제인간은 처음부터 다 자란 성인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갓난아기로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SF들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 때문에 나름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글쓴이 박상준은 SF 과학 해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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