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십만억 불국토를 지나 극락세계에 가신다구요? 현석스님


행복한 사람의 속옷
불평이 많은 청년이 있었는데, 살던 마을에서 염증을 느껴 멀리 이사하려고 했다. 이사할 곳을 찾다가 한 노인네가 “먼저 살던 동네에서 정을 못 느꼈으면 이곳도 마찬가질세”라고 따끔히 한 말에 자신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또 불행한 사람이 있었다. 재물도, 권세도, 명예도, 아내도 남부럽지 않았지만 무슨 까닭인지 늘 우울하여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다. 어렵게 얻은 부귀영화도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좋다는 것은 다 해보고 그야말로 무지개 소년처럼 행복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신통한 철학관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운명 상담을 받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손님의 말에 상담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아 속옷을 얻어입으라고 처방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 말을 믿고 불행한 사람은 이곳 저곳 수소문하면서 길을 떠났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개를 받아 어렵게 먼길을 찾아가면 누구나 꼭 한두 가지씩 불행한 점이 있었다. 다들 자신은 아니라고 했다. 한참 오랫동안 헛수고를 한 끝에 여러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소개한 사람을 찾아갔다. 그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는 말에 기대를 품고 깊은 산에서 수행한다는 사람을 찾았다. “속옷을 주실 수 없습니까? 그 속옷은 저에게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껄껄 웃기만 했다. 그가 걸치고 있는 누더기 속에는 맨살뿐이었다. 이 사람이 오랫동안 멀리 쫓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을 내밀면 다시 멀어지는 무지개와 같이 행복은 어떤 대상에서 물건처럼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멀리 갈 것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불교에서 행복 일번지는 서방 극락세계이다. ‘육조단경’이라는 책에는 “동방 사바세계 사람도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방 극락세계 사람도 마음이 부정하면 허물이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서쪽으로 십만억 불국토를 지나 까마득히 멀리 있다는 극락세계에 가길 원하지만 서방과 동방은 본래 같은 번지수다. 마음이 깨끗하면 서방 극락세계가 여기서 멀지 않고, 부정하면 가고자 해도 가기 어려운 것이다”고 했다. 이런 말을 대변하는 것이 팔공산 은해사의 ‘기기암’이다. 이 암자의 기이한 명칭은 ‘몸은 사바세계에 기탁하고 있으나 마음은 서방 극락세계에 기탁하고 있다’는 데서 나왔다. 바로 있는 자리에서 행복하면 거기가 극락이라는 말이다. 로버트 인젠솔도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행복을 누려야 할 곳도 바로 여기다”라고 우리에게 얘기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손바닥을 뒤집으면 손등’이듯이 생각을 바꾸면 괴로움 그대로가 진리라 기뻐하고 싫어할 것도 없다.

딱 좋은 밥 앞에서
이 마음은 때로 돼지처럼 욕심이 한이 없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값진 차를 타도 남이 더 좋은 것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금세 속이 상한다. 해인사에는 ‘지족암’이라고 이름하는 암자가 있다. ‘지족(知足)’은 도솔천의 다른 이름으로 욕심세계 하늘 중간에 있으면서도 특급 하늘이다. 중간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고 적당한 것이 좋다는 것을 시사한다. 질지도 되지도 않은 딱 좋은 밥과 같다. 옛 사람들은 부귀영화가 지나치면 화근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유방이 천하를 얻은 뒤 건국공신인 장량이 떠난 것도 이러한 이치를 알았기 때문이다.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면 그대로가 행복이다.
불교는 없는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불행에 처했을 때 ‘새옹지마’로 삼는 마음으로 다잡아준다. 지금 힘든 순간도 그대로 내 삶의 소중한 일부이다. 거울에 아무리 지저분한 것이 비추어도 거울의 본래 밝은 성질을 물들일 수 없듯이 아무리 큰 불행도 우리의 참된 성품을 손상시킬 수 없다. 세상살이가 거울의 허상과 같음을 알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하얀 도화지에 얼마든지 밝게도 어둡게도 그릴 수 있다. 어린왕자의 보아뱀과 같이 대상은 마음에 따라 자유자재하다. 모나리자가 되는 것도 악녀가 되는 것도 본인의 마음이 좌우한다.
지금 있는 내 주변은 어차피 나와 인연이 있어서 맺어진 관계들이다. 멀리 있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매 순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멋진 인생의 화가라고 하겠다.

글쓴이 현석스님은 팔공산 동화사의 스님이다. 동화사 승가대학 강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