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직선과 곡선은 다르지 않다 김영태


IMF를 지나오면서 가뜩이나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예술이나 인문학을 전공하는 분의 이해하기 쉽고 부드러운 글을 읽다가 과학자의 딱딱한 글을 접하고 역시 과학은 어렵고 낭만이 없이 무미건조하다는 비난을 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앞선다.

‘끌리는’ 게 다르다
과학은 세상의 무질서함과 복잡함 속에서 질서와 통일을 찾는 노력이다. 17세기 초 물리학은 우리들에게 공중에서 떨어지는 물체나, 공중으로 힘껏 던진 물체나, 지구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 달이나, 모두 동일한 원리 - 뉴턴이 발견한 운동법칙 - 를 따름을 처음으로 알게 해 주었다.
과거 2000년간 우리들은 고대 그리스 학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따라 지상에 있는 물체와 달과 같이 하늘세계에 있는 물체는 전혀 다른 원리를 따른다고 생각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의하면, 하늘세계는 지상세계와는 달리 완벽함 그 자체이고, 따라서 하늘세계에 존재하는 물체는 모두 ‘구’ 모양을 갖고 있고 또 원운동을 해야 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곡선인 ‘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도형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갈릴레오와 같은 시기를 살았던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에 의해 행성이 타원운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가졌던 생각과 주장은 아직도 현대인에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직선보다는 곡선, 곡선 중에서도 원에 더 끌린다. ‘한국 건축물이 지닌 우아한 곡선미’라는 표현에서처럼 곡선에는 온갖 찬사가 주어지는 반면, 직선에 대해서는 단순, 강직 등 수식어가 적은 편이다. 내 생각에 두 점을 이어주는 직선은 단 한 개인 반면, 곡선의 수는 무한히 많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최근 뇌과학 연구자들은 왜 사람들이 직선과 곡선에 대해 다른 감정을 갖는지를 이해하려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 세기가 되어야 답을 얻을 것 같은 어려운 문제이다.

‘눈금’의 차이
과학자들이 볼 때 직선이나 다양한 곡선 모두 1차원의 기하학 구조를 가진 대상이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둘을 동일한 대상으로 취급한다. 이것이 복잡함 가운데서 질서와 통일을 찾으려는 과학의 정신이다. 그럼 과학에서는 왜 직선과 곡선을 동일한 대상으로 취급할까? 이것은 ‘기하학 차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차원’은 선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의 눈금과 관련이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직선이 하나 있고 이 직선의 길이를 측정한다고 하자. 눈금이 1m인 자로 재보니 직선의 길이가 5m와 6m 사이에 있었다. 이때 측정 길이는 항상 작은 값을 따르기로 하면 이 직선의 길이는 ‘5m’가 된다. 길이를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이번에는 눈금이 25cm인 자로 재어보니, 5m 25cm에서 5m 50cm 사이가 나왔다. 따라서 이 때에는 직선의 길이를 ‘5m 25cm’로 읽는다. 다시 눈금이 10cm인 자로 재니 ‘5m 30cm’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자의 눈금을 작게 하면서 길이를 측정하면 길이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과학자들은 여러 눈금을 사용하여 측정한 직선의 길이를 눈금과 비교하여 ‘길이∼(자의 눈금)-1’ (길이가 눈금의 -1승에 비례 또는 눈금에 반비례한다는 의미)이라고 공식을 찾아냈다. 그런데 다양한 곡선에 대해서도 길이 측정을 해 본 결과 놀랍게도 직선에서처럼 ‘길이∼(자의 눈금)-1’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직선과 곡선은 겉보기에 달라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같은 성질을 가진다. 또 길이와 눈금과의 관계식에서 모두 지수가 ‘-1’이라 직선과 곡선은 1차원 구조라고 부른다.
이상에서 직선이나 곡선의 길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용하는 자의 최소 눈금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을 알았다. 달리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 해안선의 총 길이가 얼마냐고 묻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이 된다. 어떤 눈금의 자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해안선의 길이는 길게, 또는 짧게 나올 수 있다.

또 다른 선도 있다
최근 직선이나 곡선과는 성질이 다른 프랙탈(Fractal)이란 대상이 발견되어 과학계를 흥분시켰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의 결정이나 나뭇잎 등이 프랙탈의 대표적인 예이고, 자연 가운데는 다양한 프랙탈이 존재한다. 프랙탈이 1차원인 직선이나 곡선과 구별되는 이유는 차원이 0.6과 같이 정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에서 보듯이 프랙탈을 계속 확대시켜보면 어느 단계에서나 동일한 구조가 나타난다. 따라서 프랙탈은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형태를 가진다. 이 때문에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신비감과 아름다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뭘 모르는 과학자들?
“과학자들이 볼 때 직선이나 곡선은 같은 것이라고? 곡선과 직선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는 과학자들은 참 웃기는 사람들이네. 그러니 과학이 재미없지” 이 글을 읽고 누군가 이런 말을 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우리는 얼마나 눈앞에 보이는 현실세계에 쉽게 속아 왔는가? 과학은 현실세계의 이면에 숨겨진 대상의 참 모습을 깨닫게 해 주는 도구이다. 누구나 과학을 공부해 세상의 참 모습을 보길 바란다. 종교와 과학이 비슷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글쓴이 김영태는 아주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