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이모
나에겐 이모가 세 분 있다. 각자 사는 곳에 따라 양평 이모, 부산 이모, 양산 이모라 한다. 현재 부산과 양산 이모는 필자의
어머니(맏언니)가 계시는 진주의 한 빌라에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호칭은 부산 이모와 양산이모이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이름을 붙여 부르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301호, 302호' 이모라고 부를 수도 없기에 예전처럼 호칭하고 있다. 그렇지만
양평 이모는 이사를 하면서 서울 이모에서 호칭이 변했다. 아마도 찾아 갈 때마다 아들이 '양평 할머니'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이모가 서울에서 양평으로 집을 옮긴다고 했을 때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오랜 전부터 이모가 계획했던
일인지라 아무말도 못했다. 양평 이모집은 지금에서야 도시인이면 한번쯤 꿈꾸는 넓은 잔디 마당에 텃밭이 있고, 온갖 나무와 화초,
그리고 마당 앞으로는 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전원 주택의 모습을 갖췄지만 당시만 해도 척박한 땅 위에 낡은 움막 같은 농가 한
채가 전부였다. 움막(?) 생활 초창기, 까맣게 그을려 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아낙네였지만, 손수 잔디와 화초, 나무를 심고
새 집을 지을 때는 마당 앞의 개울에서 보기 좋은 돌들을 모아 울타리와 마당을 만들며 의욕적으로 생활했다. 그러기를 10년.
시간은 많은 것을 변모시켰다. 허름한 농가는 제법 운치 있는 전원 주택이 되었고, 멋쟁이인 이모는 비록 장화를 신고서 벙거지
모자를 눌러 썼지만 건강하고 더없이 보기 좋은 모습이다.
어려서부터 보아온 이모는 정이 많아 10남매나 되는 많은 친형제들과 시형제들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육순을 앞둔 지금도 그 정을 나누는 데는 아낌이 없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왕래해서인지 이모 집은 언제나 고향집과
같다. 오래 전 이모는 나에게 '양평에 와서 살아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웃고 말았지만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편하지
않다. 이모와 이모부 두 분이 생활하시기에 너무 적적하시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찾아 뵙거나 안부
전화 드리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친구 가족들과 함께 양평을 찾았다. 농촌의 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이모는 반갑게 맞으면서 밥과 반찬, 손수
재배한 무공해 채소를 소쿠리에 소담스럽게 차려와서는 재담까지 곁들이며 입맛을 돋게 했다. 그리고 돌아갈 무렵, 친구들에게 '아들
같은 조카'라면서 사랑을 표하셨다. 너무도 고맙고 마음 편한 이모이기에 두 분을 두고서 떠나올 때마다 항상 뒤돌아보면서 건강하시기를
기도한다.
글쓴이 윤승국은 서울아산병원 홍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선생님의 치아, 안녕하세요?
우리 병원 직원들의 구강 건강은 어느 수준일까? 또, 우리 병원 환자들은 어떠할까?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할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분명 중요한 문제일 것 같다. 예전에 1년 정도 일반 건강검진센터에 파견되어 건강보험공단의 건강 검진과 직원
건강 진단을 함께 맡았던 적이 있다. 그 때 젊은 연령에서 가장 이를 안 닦는 집단은 전공의들이었다. 특히 메이저(Major)라고
일컫는 내과계, 외과계, 산부인과, 소아과가 심했다. 우리 병원은 감염 관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의료진의 손씻기를 강조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직업성 재해' 관리 차원에서 칫솔질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병동 환자들의 실정도 마찬가지이다. 일차적인 관심이 중한 병에 있다 보니, 환자 스스로나 보호자, 간병인들도 구강 건강에 소홀해서
충치와 잇몸병이 갑자기 심해지고, 결국 식사하기도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이 본다.
그러면 치과에서는 잘하고 있을까? 40여 명의 치과 인력으로 병동 환자, 입원 환자, 직원과 그 가족들을 진료하다 보니, 진료
일정은 한없이 밀리고 치료에만 급급하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 병원 치과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현재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평소
칫솔질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충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학부 시절에는 의료가 치료 중심에서 재활과 예방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배웠는데, 아직 현실에서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3차
의료 기관에서조차 이러한 부분이 실현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오늘도 칫솔질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환자만
나무라고 있다.
글쓴이 이윤중은 서울아산병원 치과 레지던트이다.
자유... 나를 움직이는 힘
'자유를 찾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꿈꾸고 희망하는 것. 나이가 들면서 그 단어에 더욱 욕심을 내는 건
어쩌면 '자유'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꿈꾼다면, 어떤 것에 목숨을 걸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는 정말이지 자유로운 사람이다.
나는 여러 가지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비록 평균 열 개 중 예닐곱 개는 실패하거나 미뤄 두고 말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운다. 물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군가 그것을 알게 되면 이미 내겐 부담스러운 과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창작과 발명은 사고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됨을 안다. 어떠한 틀에 맞추어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곧
참신한 재능을 가두어 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색다르게 느끼는 거지만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시화 되지 않은 전쟁이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내가 착하게 살고,
나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을 줄로 믿었다. 힘든 일이 있거나 어떠한 딜레마에 빠졌을 때에도 내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생각으로
'착한 사람 컴플렉스'라는 요상한 병에 시달렸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태연해졌다. 어떠한 일이 내키지 않으면 피할 줄도 알고, 때때로 반대 의견을 제시할 줄도 안다. 이러한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나의 결정에 따른 용기임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사는 것도 잘못되진 않았다고 본다.
짧은 시간이더라도 훌쩍 떠나고 싶어질 땐 작은 가방 하나 둘러메고 홀연히 병원 밖을 나서기도 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인생에서 아주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자유 의지에 따른 책임 있는 행동일 것이다.
자유… 그야말로 나를 움직이는 힘. 그것을 진정 사랑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는 매일 매일 마음을 다잡지 않고는 이루기 힘들다. 어쩌면 날마다 마음을
고쳐먹고 노력해도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남의 눈치 안 보며,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잘 알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면 싶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 민은경은 강릉아산병원 간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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