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오늘도 추억입니다 강철수


- 행복한 날들을 행복하게 사는 것

집과 행복
행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주로 서식하는 물질인가? 어느 키가 큰 나무에 매달린 탐스럽게 익은 과일일까? 인간에게 얼마나 유익하며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딸 수 있는가?
아니 아니, 과일같이 구체적 형상을 띤 물질은 아니고, 그저 사람을 근심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가슴 뿌듯한 어떤 상황, 그것이 행복일까? 그것은 돈이나 권력으로 살 수 있고 연출이 가능한 공간일까? 주로 어떤 인간들이 그 근사한 행복을 독점, 향유하고 있을까?
미안하지만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대충은 안다.
행복은 사람이 사는 집하고 비슷하다. 어떤 집이 가장 살기가 좋은가? 널따란 정원을 거느린 으리번쩍한 저택? 평당 2,000만 원이 웃도는 최첨단 시설의 호화 맨션 아파트? 아니다. 재산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꼭 살기좋은 집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영화에서 봤음직한 호화 저택에서 귀족처럼 놀면서, 고독해서 못살겠다고 징징대는 부인을 나는 여러 명 봤다. 살기는 좋은데 관리비가 너무 든다고 툴툴대는 이도 있고, 세금은 팍팍 나오고 집값은 안 오르고 오히려 환금성이 떨어진다고 깊이 고민하는 집주인도 여럿 봤다. 쾌적한 주거환경은 이미 아니다. 반면에 좁은 평수에 전세를 살면서 매일 감사하는 사람도 있고, 볕이 따가운 옥탑방에서 행복해하는 맞벌이 부부도 여럿 봤다.

그때가 좋았다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고 어떻게 사느냐인 것이다. 김치냉장고가 없어도 맛있게 김치를 먹고 늘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거야 여보슈! 수양을 쌓은 사람들 얘기지, 쥐꼬리 월급에 단칸 셋방에서 처자랑 살아 봐! 무슨 즐거운 식사!?” 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세상은 참 신기하다. 성공한 사람은 거의 모두라고 할 정도로 다 그런 가난한 코스를 밟았고, 이따금씩 어려웠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미소짓는다. 가난에 찌들었던 젊은 날이 정말 행복했고(?) 오늘날 안정의 밑거름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지만 “그때가 좋았어” 하는 사람들의 ‘그때’도 자세히 추적 조사해 보면 결코 풍요로운 시절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들 툭하면 “그때가 좋았다”는 것일까? 일단 아련한 추억이라는 틀 속에 들어가면, 불행도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것일까? 슬픔도 아픔도 힘겨움도 단지 시간만 지나가면 행복했던 나날들로 변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오늘 지금 이 순간도 금방 과거로 흘러갈테니, 오늘 하루도 언젠가는 아련한 추억? 이 숨막히고 짜증나는 일상들이 시간이 지나면 ‘그때가 좋았다’가 된다고?

조개잡이의 몫
그렇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날도 없지 않지만, 대개 흘러간 날은 모두 그리운 추억의 서랍 속에 저장되고 쌓인다. 왜? 개도 닭도 고양이도 아닌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몽땅 행복 속에서 묻혀 산다는 뜻도 된다. 카드 막느라 열불 터지고 허리가 휘는데 이게 과연 말이 되는 말인가? 마음에 안 들지는 몰라도 절대로 말이 되는 소리다.
숨통 터지는 서울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도 이 살기 힘든 요지경 도시 속에 다 있다. 탐욕과 무절제, 한숨과 눈물이 있지만 성공과 충족, 꿈과 소망의 꽃들도 이 메마른 도시 여기저기서 피고 있다. 모든 인생들이 그러하듯 행·불행이 혼재된 공간. 서울 시민은 그 거대한 갯벌 속을 이리저리 파헤치는 조개잡이. 선택도 실행도 횡재도 허탕도 모두 조개잡이의 몫이다. 기를 쓰고 조개를 싹쓸이하려는 사람도 있고, 한두 개로 만족하는 사람, 아예 갯벌을 떠나는 사람, 먼 바다로 배를 띄우는 사람도 있다. 어느 조개잡이가 행복한 조개잡이였는지는 훗날 두 사람만이 안다. 신(神)과 본인.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할 수도 있고 매일매일 불행의 쓴잔을 들이키며 탄식하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불행의 그림자를 끌어안고 추는 블루스보다는 활달한 행복의 탱고가 우선 보기에도 좋다. 불행이라는 것은 불행해하는 자체로 주위 사람을 불편케 하고 끝내는 모두 불행해진다.

주저앉을 시간이 없다
오늘이 힘겨운가? 곧 지나간다. 오늘이 째지게 즐거운가? 곧 지나간다. 가슴을 치며 울었는가? 곧 지나간다. 지금 이대로가 좋으니 멎어 달라고 명령을 해도 반드시 지나가 버린다. 이 죽음과도 같은 날들이 빨리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도 곧 지나간다. 그리고 언젠가 미치도록 오늘을 그리워하며 미소짓는 날이 반드시 온다. 인생 80년이 복잡다단한 것 같지만 이렇게 단조로운 구조인 것이다. 꽃이 피었다가 금세 시드는 것처럼 모든 것은 청춘보다 빨리 지나간다.
이 짧은 나날들에 슬퍼하고 주저앉을 시간이 어디 있는가. 불행이란 알고 보면 그리 많지도 두려워할 것도 아니다. 부모가 준 80년 행복한 날들을 행복하게 살아라. 열심히 성실하게 추억을 저장하라.

글쓴이 강철수는 만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