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 세상보기 남색의 학창시절 조은수


남색의 학창시절 - 조은수가 그리다

가랑잎만 굴러가도 꺄르르 몸을 구르며 웃음을 참지 못하던 그 시절, 바다 건너에서는 진실 혹은 거짓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삶을 좇아 전파를 쏴 올렸다. 모두다 똑 같은 남색 옷에, 아침 7시만 되면 도시락 두 개를 들고 집을 나선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시각은 10시. 믿기지 않으리만큼 잔혹했던 청소년 시절, 짓밟힌 낭만. 자유? 하지만 당사자로서 감히 말한다. 거짓은 아니지만 그르다는 것을,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었다는 것을….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해 둔 깨끗이 세탁해 놓은 교복을 다시 입어본다. 비록 번들번들한 정전기는 사라지고, 옷깃의 때는 빠졌지만 추억은 절대로 세탁될 수 없다. 그리고 난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 남색의 크레파스를 쥐고 학창시절을 다시금 그려본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는 등교길, 고민 없이 집어 입을 수 있는 교복 덕에 조금은 깨끗할 수 있었던 나의 출석부. 아침 자습이 끝나자마자 까먹는 점심 도시락은 나의 든든한 아침. 숫기없는 총각 선생님의 어리숙한 국사시간. ‘선생님~ 첫사랑 얘기~ 아~’ 진도만 나가는 진돗개 수학시간, 전 시간의 용기는 어디다 버려두고 눈치 봐가며 조용히 문제나 풀어야지. 점심시간에는 학창시절 재미의 일등공신 매점 아줌마의 비하인드 스토리. 마의 5교시 수면 삼매경을 지나 화장실 청소까지. 지금은 야자시간? 야자타임? 어떠한 애교와 어리광에도 넘어가주는 친구 같은 담임 선생님.

입 속의 밥이 포도당이 되는 것처럼 남색의 추억은, 교복의 추억은, 학창시절의 추억은, 씹고 씹고 곱씹을수록 단 맛이 난다. 끔찍했던 단체기합, 시험 직후의 학부모 동반면담, 손톱검사, 두발검사, 교복검사의 교련시간, 기나긴 운동장 조회조차 시간이라는 아밀라아제와 함께 머금고 있으면 어느새 단 추억이 된다.

남색 크레파스밖에 없던 시절, 나는 명암을 조절해가며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많은 학교에서 교복을 없애고, 두발을 자유화하고, 자습시간을 없애고, 한 다스의 크레파스 세트를 쥐어주지만, 네모난 바보상자 속에 비춰지는 요즘 학생들은 크레파스를 쥘 손가락 힘조차 없어 보인다. 그들의 마음도 점점 네모져가고 있는 것 같다.



선생님들 싸우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