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상상 거기 이미 동양화가 있지 않더냐 조영남


지난 5월 19일 개막된 과천 제비울 미술관의 조영남 ‘태극기 전시회’는 지난 3, 4월호 ‘아산의 향기’에 실린 기사 덕분에 모처럼 뻑쩍지근한 오픈식을 치루었다. 어쨌거나 나는 일거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그리는 작가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순서가 뒤바뀐 것이었다. 사실상 나는 10여 년 전부터 화투를 그리는 화가로 일단 인정을 받았었다. 내가 그림그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한테 화가 조영남 하면 “아하! 화투 그리는 가수화가”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다. 정확하게 1990년 미국 LA ‘시몬스 화랑’에서 거의 첫번째 본격적인 미술 전시회를 열었을 때 나는 두 가지 특이한 사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가 있었다. 첫째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괴상망측하게도 화투짝을 그린다는 사실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20여 년 전부터 화투짝을 그려 대기 시작했다. 왜 하필 화투를 그리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는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산, 바다, 정물, 풍경 등등은 이미 수많은 화가들이 그려낸 소재들이다. 나는 나 혼자만 그릴 수 있는 독창성 있는 그림만 그리겠다. 남들이 그린 걸 뒷북치듯 그리긴 싫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린 적이 없는 화투짝들을 그리는 것이다. 거기에는 이미 동양화가 존재하지 않더냐. 나는 동양사람이고 나는 동양화를 그리는 것인데 뭐가 어떠냐.”
아무리 내가 각종 이론을 내세워가며 내 화투 그림의 우수성을 내세워 봤지만 무식이 통통 튀는 내 친구 녀석들은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글쎄 니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애들이 있는 집 거실에 어떻게 화투짝 그려진 그림을 걸 수가 있냐. 참 딱하다.”
나는 화투 그림을 그리며 미술계의 본류에선 개혁신당파적 화가로 잔뜩 인정을 받았지만 내 친구 녀석들한테는 정작 화투 그림 한 점도 못 팔았다. 그러나 그런 수모를 견디며 10여 년 계속 화투를 그리다 보니까 이젠 친구 녀석들이 화투 그림 좀 하나 싸게 살 수 없냐고 사정을 한다.
내가 죽기 전에 나의 화투 그림이나 태극기 그림들이 약간의 향내를 풍기니 나는 마냥 희희낙락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조영남은 가수이자 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