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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2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전남 여수
  • 수상자(단체) : 위계홍

100세 넘는 부모 모시며 배우는 삶

 

 

전남 여수에서 5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위계홍(60) 씨는 어머니의 사랑을 유독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친정에 갈 때도 위계홍 씨를 데리고 다녔고, 어릴 때부터 “너는 나와 마지막까지 오래 같이 살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위계홍 씨는 아직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책 사이에 엿을 끼워 자기에게만 건네준 일을 잊지 못한다.

 

위계홍 씨는 결혼을 하지 않고 103세인 아버지와 99세인 어머니를 30년간 부양하며 살고 있다. 부모 모두 100세에 가까운 나이라 삶의 위기를 몇 번씩이나 겪었지만, 위계홍 씨의 극진한 간호로 고비를 넘겨왔다. 위계홍 씨는 부모가 살아있는 이유가 아직도 자식에게 가르칠 것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극진한 간호로 부모의 건강을 회복시키다

 

                                           <자택에서 부모와 함께한 위계홍 씨>

 

순천고를 나와 충남대 법학과에 입학한 위계홍 씨는 대학 졸업 후 3~4년 동안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향인 여수에 내려와 부모와 함께 살면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여수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초대 사무국장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 광주전남사무국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했다. 이후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현장 노동을 하며 생활 폐기물을 처리하는 환경회사 사무직, 용접공 보조, 경비원 등 다양한 일자리를 찾아 생계를 이어왔다.  

 

어머니는 2000년, 77세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94세에 이르기까지 뇌경색으로 네 번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특히 마지막 입원 때에는 경과가 좋지 않아 병원에서 임종을 준비하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위계홍 씨가 집에서 정성으로 돌보며 어머니를 회복시켰다. 어머니는 95세 때 오른쪽 고관절과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도 겪었는데, 거동이 불가능한 입원 기간 동안 어머니 간호를 홀로 책임지며 간병에 힘썼다. 덕분에 어머니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아버지는 100세에 이르는 나이까지 큰 질환을 겪지 않고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해왔다. 하지만 작년에 화장실에서 넘어지면서 합병증으로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환각을 느끼는 섬망 증상이 나타났다. 치매와 비슷하게 여긴 주변 사람들이 요양병원 입원을 권했지만, 어머니 때와 같이 집에서 아버지를 정성껏 보살폈다. 덕분에 7개월 만에 아버지의 섬망 증상이 사라졌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간호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다면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의무감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누나의 보호자가 되어

 

위계홍 씨의 둘째 누나는 4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2000년에 중증 조현병이 생겨 거리를 방황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형제자매들은 각자 결혼해 바쁘게 생활하다 보니 둘째 누나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위계홍 씨는 부모를 대신해 누나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누나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부모님이 워낙 누나 걱정을 많이 하시니까요. 부모님의 걱정과 근심을 덜어드리고 싶어 한 일이지요.”  

 

경남 거제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왕복 6시간을 이동해 국립나주병원에서 약을 받아 누나에게 전달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와 입원 치료를 반복한 누나는 현재 순천에 있는 정신요양원에 입원해 있다. 위계홍 씨는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되기 전까지 면회를 다니며 누나를 챙겨 왔다.

 

부모는 삶의 원동력

 

                                 <아버지 백수연 잔치에서 가족과 함께한 위계홍 씨>

 

위계홍 씨는 현재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공공폐수처리시설에서 청소 및 조경 관리를 맡아 근무하고 있다. 매일 아침 4~5시에 일어나 부모의 아침 식사를 챙기고 8시까지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주변 동료들에게 유별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깔끔하고 열심히 맡은 일을 해낸다. 퇴근길에는 부모가 좋아하는 생선회나 구이용 생선을 사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부모님은 제 삶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퇴근하면 어느 시장에 가서 신선하고 맛있는 것을 사드릴까 고민해요. 돈을 버는 덕분에 조금 더 큰 생선을 살 수 있을 때 기쁜 마음이 듭니다.”

 

거동이 어려운 부모의 입장이 되어 집안 곳곳에 불편한 점이 없는지 살피고, 부모를 매일 깨끗하게 씻기는 일도 위계홍 씨의 일상이다. 어릴 때는 부모가 위계홍 씨 숟가락에 반찬을 놓아주었지만, 지금은 위계홍 씨가 부모의 숟가락에 반찬을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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