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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경남 하동
  • 수상자(단체) : 하맹선

강인한 어머니의 삶

 

 

“혼자 대가족을 부양하며 자녀들을 정말 훌륭하게 키웠어요” “아픈 시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돌본 것은 동네가 다 알죠.”

 

경남 하동군 옥종면으로 시집을 와 터를 잡은 지 70여 년, 하맹선(87) 씨를 향한 가족과 이웃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1954년, 열여덟에 결혼해 서른하나에 남편을 잃고, 시부모와 다섯 명의 자녀, 세 명의 시동생까지 살뜰히 부양한 세월은 때론 참 모질었다. 그 고단한 인생을 헤쳐 오면서도 품위와 인심을 잃지 않고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했다. 효부이자 헌신적인 어머니, 마음씨 좋은 이웃으로 살아온 하맹선 씨는 여전히 든든하게 기댈 수 있는 어른으로 여겨진다.

 

 

<교직에 있는 두 딸과 함께 한 하맹선 씨(왼쪽)>

 

 

손수레에 실린 가장의 무게

 

1967년, 첫째가 열 살, 막내가 100일도 되지 않은 때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하맹선 씨의 어깨는 늘 무거웠다. 유학자인 시아버지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시어머니 대신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농사일은 처음이라 남들보다 일찍 논밭에 나가 늦게까지 일해야 했고, 돈 되는 일이라면 부지런히 나섰기에 사계절은 늘 바빴다. 삼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겨 말리면 여름철 수입원이 되었고, 직접 벌을 키워 꿀을 얻었다. 벼 추수 후에는 배추와 무를 솎아 시장에 내다 팔았고, 겨울 땔감은 온 산을 누비며 긁어모았다. 딸 민인순 씨는 무게를 못 이겨 다리를 덜덜 떨며 땔감을 등에 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디든 함께 한 손수레에는 강한 생활력과 가족을 위한 마음이 함께 실렸다. 수확한 곡식과 채소를 4km 떨어진 장에 팔기 위해 동이 트기 전 손수레를 끌었고, 돌아오는 길에는 시아버지가 좋아하는 조기를 잊지 않았다. 위암 판정을 받은 시아버지의 병세가 심해 거동이 어려울 때는 손수레에 직접 시아버지를 태워 병원과 약국을 오갔다. 끼니마다 불린 쌀을 맷돌에 갈아 죽을 쑤고, 좋아하는 생선을 꼬박꼬박 올렸다. 존경하는 마음으로 시아버지를 모신 만큼 목욕과 배변 처리까지 기꺼이 담당하며 7년 동안 병시중을 들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꾸 ‘내 임종은 네가 보지 마라’고 하셨어요. 당신의 병이 옮는다고요. 한동안 실랑이하다 제가 등을 돌렸는데 그순간에 숨을 거두시더라고요. 믿고따르던 어른이었는데 떠나고 나서 한동안 참 서운했어요.”

 

며느리를 향한 각별한 사랑과 고마움은 그렇게 전해졌다. 시어머니 역시 치매 판정을 받고 오직 며느리만 알아봤다. 5년을 앓다 세상을 떠난 시어머니는 평생 낀 금가락지를 며느리에게 남겼다. 그것이 자신을 아낀 마음임을 하맹선 씨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칠순을 맞은 하맹선 씨와 가족들(앞줄 가운데)>

 

 

강인한 어머니이자 위대한 스승

 

하맹선 씨는 빠듯한 살림에도 다섯 자녀의 교육에 힘썼다. 해방 직후 어수선한 분위기에 본인은 초등학교를 중퇴해야 했지만, 교육열은 남달랐다. 부뚜막의 숯검정으로 바닥에 ㄱ, ㄴ과 1~10을 써가며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아이들에게 한글과 수를 가르쳤고, 시험 기간에는 아무리 바빠도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없는 살림에도 고전무용, 씨름, 기계체조 등 특별활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무엇보다 여자라고 차별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여자가 사회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려면 교사가 좋겠다고 추천해 세 딸은 줄줄이 교대에 진학했다. 덕분에 자녀들은 건축사, 초등학교 교장, 중학교 교장, 중학교 교사 등으로 일하고 있다.


“애들이 잘 자라준 덕에 힘든 줄 몰랐어요.”

 

하맹선 씨는 모든 공을 자녀들에게 돌린다. 하지만 다섯 자녀는 평소 험한 말 한 번 쓰지 않고, 회초리 한번 들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묵묵히 믿고 지켜봐 준 어머니를 최고의 스승으로 꼽는다. 가족뿐 아니라 이웃을 향한 마음도 넉넉했다. 형편이 어려운 친척이나 이웃이 있으면 편견 없이 먼저 챙겼다. 봉사단체에 가입해 빵과 떡, 음식을 나누는 봉사를 즐거움으로 여긴 하맹선 씨에게 베풂은 일상이었다.

 

다리가 저리고 등이 굽을 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하맹선 씨는 변함없이 부지런하다. 마을회관을 오가며 시 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영어 철자를 배우는 재미에도 푹 빠져있다. 딸, 아들, 사위, 며느리, 손자와 증손자까지 29명 대가족을 일군 어른으로서 그녀는 여전히 따뜻하게 가족과 이웃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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