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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3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전북 장수
  • 수상자(단체) : 풍숙영

타국에서 비로소 만난 가족의 정

 

 

전북 장수에 사는 풍숙영(56) 씨는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남편, 중학생인 둘째 딸의 식사와 집안일을 챙긴 후 밭일을 하다가 출근하기 위해서다. 직장인 장수한우지방공사 사료공장에서 맡은 일도 만만치 않지만, 퇴근 후에는 다시 집안일과 밭일을 하고 주말이면 주변 마을의 일손을 돕는다. 그래도 풍숙영 씨의 얼굴에는 고된 기색이 없다. 한족 출신의 결혼이주여성인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가족들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풍숙영 씨 부부와 시어머니, 딸과 함께 한 가족사진(가운데)>

 

 

진실한 사랑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다

 

중국 흑룡강성(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나 16세에 어머니를 여읜 풍숙영 씨는 18세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24세에 한 첫 결혼은 깊은 상처만 남긴 채 8년 만에 끝났다.

 

이후 한국식당에서 일하며 홀로 딸을 키우던 풍숙영 씨는 2005년 한국에 살고 있던 지금의 남편을 소개받았다. 보조기 없이는 혼자 걷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몸이 불편해도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첫 통화에서 받은 느낌도 좋았다.


2년 동안 전화 통화를 하며 애정과 신뢰를 쌓은 두 사람은 2007년 12월 하얼빈공항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이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풍숙영 씨를 찾아간 것이다. 직접 만난 남편은 생각보다 훨씬 건강했고, 무엇보다 자상하고 친절했다. 친정 식구들은 장애가 있는 한국 남자와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풍숙영 씨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첫딸 역시 “내 걱정하지 말고 엄마 행복을 찾아요”라며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결혼 승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주선양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초혼의 중증장애인인 한국인 남성과 재혼에 아이가 있는 중국인 여성의 결혼을 위장결혼으로 의심한 것이다.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 남편이 펑펑 울면서 나왔어요. 한 번 기각되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될 때까지 해보자고 위로했죠. 하지만 남편이 ‘혼자서는 한국에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다음날 다시 총영사관에 갔어요. 총영사께서 저희의 진정성을 알아봐 주셔서 겨우 승인받았죠. 기각됐다가 승인받은 건 저희가 처음이었어요.”

 

 

<시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난 풍숙영 씨(오른쪽 두 번째)>

 

 

시어머니 뒷바라지에 정성 다해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 풍숙영 씨는 시댁 식구들의 환대를 받았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우리 집에 이런 복덩이가 들어왔나 몰라” 시어머니는 항상 입버릇처럼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풍숙영 씨도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 처럼 여겼다. 일찍 세상을 떠난 친정어머니의 빈자리 때문에 늘 허전했던 그의 마음을 시어머니의 사랑이 오롯이 채워주고 있었다. 결혼 1년 후인 2009년에는 딸이 태어나 기쁨을 더했다.


단 하나 걱정이라면 시어머니의 건강이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농사를 지으며 자식 뒷바라지를 해온 시어머니는 항상 어딘가 아프고 건강이 좋지 않았다. 결국 5년 전 치매가 시작되어 방 곳곳에 오물을 묻히거나 난폭하게 행동했다. 고생하는 풍숙영 씨를 안타까워하던 시아주버니가 시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하지만 풍숙영 씨는 일주일 만에 다시 집으로 모셔 왔다. ‘새 아가’라 부르며 딸처럼 대해준 시어머니였기에 도저히 시설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시어머니도 그의 마음을 아는지 다른 사람의 손길을 완강히 거부했다.


직장인, 농부, 며느리, 아내, 엄마로 1인 5역을 감당하며 바쁘게 사는 풍숙영 씨의 곁에는 언제나 남편이 있다. 비록 일을 많이 돕지는 못하지만, 이른 새벽 밭일을 하러 나갈 때 항상 같이 나가고, 재활운동도 더 열심히 한다. “손발이 되어주지는 못해도 마음으로는 아껴주겠다”라던 약속을 말없이 실천하고 있다.

 


선한 마음으로 언제나 충만한 삶


일가친척은 물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풍숙영 씨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다.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기꺼이 달려가 돕고 주변 결혼이주여성들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힘이 되어준 덕분이다.

 

결혼 후 단 하루도 제대로 못 쉬었을 정도로 바빴지만 풍숙영 씨의 삶은 언제나 충만하다. 항상 ‘천사’라고 불러주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 그를 보며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이웃들. 2011년 현장 관리직으로 입사한 직장에서는 특유의 성실성을 발휘해 10년 만에 대리로 승진하고 우수직원상도 받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기쁜 것은 얼마 전 딸이 건넨 “엄마가 자랑스러워요”라는 말이었다. “엄마는 일밖에 모르는 것 같아요”라며 불평하던 딸이 한 말이기에 풍숙영 씨에게는 어떤 상보다도 뿌듯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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