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상
- 시상명 : 아산상
- 년도 : 2024
- 부문 : 효행ㆍ가족상
- 소속(직위) : 충북 단양
- 수상자(단체) : 김명희
아픈 가족의 든든한 지팡이
매일 아침 김명희(56) 씨를 일으키는 힘은 가족을 향한 애정에서 나온다. 거동이 어려운 시모, 눈이 불편한 남편과 딸, 중증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까지 김명희 씨의 손길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식구들 아침을 챙기고, 집을 비운 동안 먹을 음식까지 챙겨 놓은 뒤에는 밭에 나가 농작물을 살핀다. 바쁜 일상으로 아픈 허리를 두드리면서도 김명희 씨의 표정은 밝다.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김명희 씨>
사랑과 인내를 가르쳐준 가족
김명희 씨는 1968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별세하고 김명희 씨의 어머니는 홀로 네 명의 자녀를 키웠다. 김명희 씨도 일찍부터 어머니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25살 되던 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7남매의 장남으로 충북 단양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성실한 사람이었다. 시부모도 자상하고 너그러웠다. 착한 며느리를 맞았다고 기뻐하며 김명희 씨를 따뜻하게 품었다.
“어릴 적부터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랐어요. 시집와서는 시부모님께 사랑을 배웠고요. 제게 정말 잘해주셨거든요. 힘든 일이 생겨도 가족이 똘똘 뭉치는 방법 역시 우리 어머니와 시부모님을 보고 배운 것 같아요.”
결혼하고 얼마 안 되어 시련이 찾아왔다. 남편이 갑상샘 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은 것이다. 더 이상 일하기 어렵게 되자 남편은 노래방을 그만두었다. 어렵지 않게 임신도 했지만, 아들은 중증 지적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2004년 에는 농사일을 거들던 남편이 눈을 크게 다쳤다. 각막이 식까지 받았지만 형체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을 잃었다.
경제적인 어려움, 아들의 장애, 거기에 남편마저 시력을 잃자 김명희 씨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숨어서 울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다시 일어섰다.
친부모, 자식 같은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
김명희 씨는 시부모에게도 정성을 다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김명희 씨는 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가족과 함께한 김명희 씨(오른쪽 두 번째)>
2010년부터 시아버지가 중증 치매로 병석에 누워 있게 되자 김명희 씨는 임종 전까지 꼬박 5년 동안 집에서 끼니를 챙기고 대소변을 받아냈다. 병원에 서는 두 사람을 부녀 사이로 알 정도로 정성을 다했 다. 시어머니와도 사이가 좋아 손을 꼭 붙잡고 다녔 다. 농사를 지을 때는 밭에 음악을 틀어 놓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 시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는 김명희 씨가 직접 수발을 하기 어려웠다. 고된 농사일과 간병으로 그 역시 허리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요양보호사로 일하던 시누이가 와서 시어머니를 돌보기로 했다. 물건을 드는 일도 힘에 부친 김명희 씨는 농사 규모를 줄였다. 현재 그는 고추, 들깨 등 필요한 것만 농사지어 살림에 보태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 가족
힘든 일상에서도 김명희 씨는 감사할 일만 골라 마음에 담는다. 다정한 남편, 아빠를 닮아 밝은 성격인 아이 들, 여전히 자신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시어머니가 그의 곁에 있다. 아들에게는 한글과 예절 선생님, 자기에게는 상담사가 되어주는 사찰 스님, 농사짓기 어려운 김명희 씨 가족을 위해 힘을 보태주는 마을 사람들도 고맙다.
그는 마을에서 반장을 맡고 있다. 힘쓰는 일은 어렵지만, 음식 솜씨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해 마을 행사에서도 앞장서서 일한다. 주변을 청소하고, 농약병을 수거해 내다 팔아 마을 공공기금에 보태기도 한다. 힘든 인생이 었지만, 그는 한 번도 혼자인 삶을 생각한 적이 없다.
“다시 태어나도 저는 우리 남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로 태어날 거예요. 가족이 되는 순간 다른 삶은 선택할수 없어요. 다만, 다시 태어나거든 그때는 다들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요. 이번 생의 꿈도 다르지 않아요. 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사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습니다.”
김명희 씨는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준비한다. 가족 때문에 힘든 일도 있었지만, 가족이 있어서 오늘도 버텨낼수 있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김명희 씨에게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줄 것이다.